사소한 말 하나가 오해로 이어질 수 있지만, 다름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관계는 자란다. 부부가 맞춰가는 일상의 기록.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는 길, 남편이 말했다. “종합비타민 하나 사와.” 나는 잘 몰랐기에 “같이 가자”라고 했다. 그렇게 함께 약국에 들어갔다.
약사님의 설명을 듣고, 남편은 약을 받아 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 상비약도 한 통 사와.” 나는 되물었다. “한 통이요?” “응, 한 통. 한 개.”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내가 아는 그 상비약은 드링크병. ‘한 통’이면 박스일까? 그런데 ‘한 개’라고도 하신다. 병을 ‘한 개’로, 박스를 ‘한 통’으로 말씀하시는 걸까?
“한 병이요? 한 박스요?” 나는 확인하고 싶어 다시 물었지만,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한 통이라니까.” 그리고 끝. 설명은 없었다.
“됐어. 내가 갔다 올게.” 남편이 다녀온 약국에서 들고 온 건 하얀 플라스틱 통에 든 알약형 상비약이었다. ‘한 통’이 맞았다. 내가 몰랐던 거였다.
그래서 물은 거였다. 정확히 알고 싶어서. 다음에 또 이런 상황 안 만들려고.

남편
“계속 같은 말 반복하니까, 따지는 줄 알았지.”
나
“몰랐으니까 다시 물은 거야. 설명이 없었잖아. 어머님도, 당신도 그냥 ‘한 통’이라고만 했잖아.”
며칠 전,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서로 맞춰가며 살자고.
그동안은 맞추려고만 했다고.
그래야 다 편하니까, 나만 참으면 되니까… 그렇게 살아왔다고.”
그래서 이제 표현하려고 한다고. 이해가 안 되면 말해보자고.
나는 그 약 하나를 통해 서로의 말이 왜 다르게 들렸는지를 돌아봤다. 설명이 없던 말, 다르게 아는 기준, 그리고 그걸 맞춰가려는 마음.
말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서로를 향해 닿을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설명 없이 앞뒤를 자르고 말하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말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설명이 빠져 있고, 내가 아는 건 남도 알 거라고 당연히 여길 때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그냥 넘기기보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간다. 나만 참으면 다 편하다고 여겼던 그 긴 시간을 지나, 이제야 내 마음이 보이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작은 표현에도 아직 서툴지만, 그래도 표현한다.
서로의 기준을 묻고, 다르게 들린 마음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맞춰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말이 달라서 멀어지기보다, 말로 풀어가며 가까워지는 우리 모두의 중년이길 바라며.
이 글을 계기로, 말의 어긋남과 대화의 심리에 대해
조금 더 정리해봤어요.
→ [2편]말이 엇갈릴 때, 부부 대화의 심리적 팁’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