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지켜본 말없는 사랑, 꿈속 아버지

말로 표현 못 했던 아버지의 사랑,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진심. 꿈속 장면을 통해 다시 꺼내 본마음의 기록.

멀리서 지켜본 말없는 사랑, 꿈속 아버지

어느 날, 꿈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우리 집이었다. 부엌이 아닌, 남편의 컴퓨터 책상.
아버지는 국물에 밥을 말아, 내 아들 옆에 조용히 앉아 드시고 계셨다.
나는 무심히 말했다.
“딸 있는데, 밥상 차려달라고 하지 그러세요. 왜 그렇게 대충 드세요?”
아버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이 밥 먹고 갈라고.”

가까이 오시지 않았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항상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
표현에 서툴렀지만, 늘 곁에 계셨던 사람.
그게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벌써 10년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이제 더는 못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울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모질게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담담히 살아냈다.
그런데 최근, 친정집에 다녀와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 꿈은, 아버지가 지금도 우리 걱정하는 거지.”
엄마의 말에 나도 말했다.
“내 아들 옆에서 밥 드신 거 보면, 우리 아이도 지켜보고 계신가 봐.”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날, 휠체어에 탄 모습을 꿈에서 봤다.
신경이 쓰여서 일을 멈추고 내려갔고,
다음 날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병원에 오래 머무르셨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쯤, 아이들과 함께 병실을 찾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말하게 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때 느끼지 못했던 마음을
말로라도 전했다.
“아빠, 사랑해요.”
진심이 가득하진 않았지만, 그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엄마는 “좀 더 사실 것 같다”며 우릴 안심시키고,
“김서방도 챙기고 애들도 학교 가야 하니 이제 올라가라”라고 했다.
그래서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올라왔고,
그다음 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로 아버지는 꿈에 자주 나오지 않으셨다.
그러다 마흔을 넘긴 지금, 다시 꿈에 나왔다.
그리고 그 꿈이 마음 한 곳을 톡 하고 건드렸다.

내가 감정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고 살아온 사람이란 걸,
그날 이후 더 분명히 알게 됐다.

표현이 서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아버지.
그런 모습이,
이제는 내 안에서도 보인다.

멀리서만 맴돌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오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땐 몰랐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따뜻하다고 말한 적 없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서툴렀지만
그 자리에 늘 계셨고,
조용히 등을 내어주던 사람.

말없이 지켜보던 아버지는,
사실 햇빛처럼 조용히 곁을 밝혀주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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