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마다 반복된 간섭과 감정 소모.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날이 아닌, 내 마음이 편안한 방식으로 기념일을 보내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생일이 기대되는 날이 아니게 된 건.
누구에겐 축제일지 몰라도,
나에겐 어느 순간부터 감정의 시험장이 되어버렸다.
남편 생일이 다가오면
형님은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미역국은 했어? 닭볶음탕도 해야지.”
그 말은 부탁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한두 번은 그냥 넘겼다.
‘생일 챙겨주는 거에 관심 가져주는 건가?’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근데 그게 매년 반복됐다.
심지어 어느 해엔
직접 들이닥쳐선
내가 말한 메뉴를 실제로 했는지
냄비 뚜껑을 열어보며 확인했다.
“닭볶음탕은 어디 있니?”
“간은 봤어?”
정말 요리를 한 건지,
말만 한 건지 확인하러 온 듯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내가 뭘 빠뜨렸나?
그 생각보다 먼저 든 건
‘이건 누구 생일이지?’ 하는 질문이었다.
그날 저녁, 결국
그녀는 남편 생일상에 같이 앉았고
우리는 준비한 음식보다
묘하게 흐트러진 감정 속에서 밥을 먹었다.
그게 몇 년을 반복했다.
나중엔 내 생일에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뭐 먹고 싶니?”라는 말 뒤엔
이미 그가 생각한 메뉴가 있었고,
내가 원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고 싶어요.”
그 말이 속에만 맴돌았던 날,
나는 입 밖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순댓국이요.”
그러자 돌아온 말,
“너는 왜 매번 촌스럽게 순댓국이니?”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 한마디가 생일의 온기를 식혔다.
그날도 결국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우리는 또 누군가의 방식대로
기념일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해 이후,
우리 가족은 조용히 약속했다.
기념일은 우리끼리, 편안하게 보내자.
그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겪고 나서야 알게 된 나를 위한 조정이었다.
누군가를 맞추느라 애쓰던 나는
내 마음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그래서 시선을 바깥에서 거두고
나에게로 돌렸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구나.
그걸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생일은 그런 걸 가르쳐줬다.
내가 어디까지 괜찮은지,
어디부터는 멈춰야 하는지를.
아이들 생일도 마찬가지.
정성보다는 마음,
준비보다는 웃음.
더 이상 상차림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기념일을 지키기로 했다.
나는 지금도 조용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조용함 안에
내 감정의 경계가 있다.
누군가를 위한 날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날로
기념일을 다시 정의하는 중이다.
기념일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날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방향을 선택하는 날이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다 내어주는 관계는 만들지 않는다.
혹시 지금,
타인의 기대 속에서
'예민한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면,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이렇게 물어봐도 괜찮다.
“나는 어디까지 괜찮은가?”
그리고 거기까지는, 지켜도 된다고.
그렇게 감정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거절’이라는 선택이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시작이라는 걸 알게 됐다.
관계를 지키고 싶었지만, 결국 나를 지우게 됐던 시간.
그 시작이 궁금하다면,
[1편: 가까운 사이, 먼 마음] 가족 안에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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