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말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사랑은 분명히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운 감정 언어의 기록.
살다 보면, ‘왜 이렇게 다를까’ 싶은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겐 남편이 그렇다.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날, 남편은 해결부터 말하고 나는 마음을 꺼냈는데, 남편은 정리를 하려 든다. 그런 날이 쌓이면,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할 생각이 있긴 한 걸까?’ 싶고, 때론 혼자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보려 한다. 남편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기보다, 그렇게 살아오도록 자라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편은 누나와 열 살 차이 나는 막내였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가족 안에서 그는 조용히 맞추고, 감정을 꺼내기보다 참고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감정은 표현하는 게 아니라, 조절하고 감내하는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이제 와서 갑자기 ‘느낌이 어땠는지’ 말하라고 하면 어쩌면 막막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해보려 한다.
내가 감정을 꺼낼 때마다, 남편은 피하거나 논리로 되받아친다. 그건 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감정과 연결되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맘을 가져본다.
그래서 이제, 나도 조금씩 다르게 말해보려 한다. ‘왜 몰라줘’보다 ‘나는 이런 느낌이었어’라고 말하고 ‘그건 당신이 틀렸어’ 대신 ‘내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졌어’라고 말해보려 한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남편이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기 전에, 나도 그를 이해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려 한다.
그게 우리가 계속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그리고 문득, 나라는 사람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감정보다는 상황을 먼저 파악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 입장에서 상황이 정리가 돼야 비로소 말이 나오는 성격이다.
말이 늦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다 정리한 후에야 표현이 나오는 스타일이다. 그걸 몰랐을 땐 ‘왜 나는 말이 느릴까’ 자책했지만, 지금은 그게 내 방식임을 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사랑은 밥상 위에 올라 있었지만, 마음에 대해 나누는 말은 드물었다. 아빠는 조용했지만, 존재만으로 따뜻함을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감정보다는 정리로 살아왔다. 누구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감당하는 걸 익혔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나와는 달랐기에,
마음 한편엔 허전함이 남았다.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따뜻한 말 대신
책임감과 기준이 사랑처럼 전달되었기에
늘 스스로를 조이듯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나는 지금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를 조금 더 기다리고, 이해하려 애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표현은 달라도 마음이 있다는 걸
나는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전하는 말이 서툰
그 사람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고 싶었다.
그런 엄마, 그런 아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보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건넸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사랑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준 분이었다.
밥을 하고, 집을 정리하는 일로 애정을 대신했기에,
말이 없는 사랑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그 안에는 늘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빠는 무심한 듯 따뜻한 사람이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짧은 장난처럼 건넨 손길 속에 마음이 있었고,
말은 없었지만, 늘 지켜보던 눈빛이 있었다.
그 사랑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표현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마음을 내 안에서 찾아 나에게 전해주는 중이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족 안에서 막내였지만, 어릴 때부터 큰 짐을 감당해 왔다. 누나의 시선, 어머니의 기대, 있지만 없는 형의 부재 속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고 움직이던 사람.
말보다 결과가 중요했고, 감정보다 해결이 익숙했다.
우리가 부딪히는 지점은 대부분, 서로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감정을 나누고 공감받고 싶었고, 그는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하는 걸 우선시했다. 나는 말로 풀어내길 원했지만,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응답하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깊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방식이 다를 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는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부딪힘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늘도 실천이 될 거라 장담은 못하지만 적어본다.
다름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나, 나는 말하기 전에 내 감정을 간단하게 요약해 전달한다. “지금 서운해” 또는 “설명보다 위로가 필요해” 같은 짧은 말로 시작한다.
둘, 그는 반응하기 전, “지금은 들어야 하는 순간인지, 해결할 차례인지”를 먼저 물어준다. 이 작은 질문 하나로, 대화의 방향이 달라진다.
셋, 대화의 결론보다, 그 시간에 서로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하자. 말이 부족해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마음을 지켜주는 방법이 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서 불편한 것’과 ‘달라도 괜찮은 것’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연습. 이제 그걸 배우기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