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과 정형돈의 조용한 웃음에서 시작된 감정 기록.
누군가와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뜻이다.

지드래곤과 정형돈이 다시 웃는 장면을 본 이후,
내 안에서 오래 묵은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누구 앞에서 다시 웃을 수 있었나?”
상처 이후에 누군가와 웃는다는 건
단순한 친밀함 이상의 의미다.
그 사람 앞에서 방어를 내려놓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딸에게 물었다.
“넌 누구 앞에서 다시 웃을 수 있었어?”
아이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전 학교 친구들, 세 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미 학교도 바뀌었고, 자주 보지는 않지만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일상적인 말 한마디에 진심을 담아주는 친구들.
그 아이들은 딸의 표현대로라면
“삶에 기댈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를 떠올렸다.
나는 과연 그런 친구가 있었을까?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늘 먼저 맞추고, 들어주고, 참고,
그렇게 내 마음은 점점 안쪽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줄여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결국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딸이 그런 친구들을 만났다는 건
참 고맙고, 든든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이제 누군가 앞에서 웃을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확실한 답은 아직 없지만,
적어도 이 마음은 기억해두고 싶다.
다시 웃을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 옆에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떠올리며
천천히라도 내 안의 단단한 문을 다시 열어볼 수 있기를.
상처를 지나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
딸은 ‘진짜 친구들’을 통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 진심이 웃을 때 – 피하고 싶었던 관계에서 배운 것